곤충 이야기

두 손 모아 비벼내는 생명의 궤적, 파리가 가르쳐 준 ‘철저한 준비의 미학’

이모 저모 2026. 7. 17. 23:07

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두 손 모아 비벼내는 생명의 궤적, 파리가 가르쳐 준 ‘철저한 준비의 미학’

봄날의 봄까치꽃이 지나간 자리에 매미와 잠자리가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모기가 치열한 생존의 바늘을 세울 때, 화려한 날개나 정겨운 울음소리 대신 온몸으로 삶의 비바람을 맞서며 웅크린 채 쉴 새 없이 손을 비벼대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파리입니다.

 

인간의 밥상 위를 성가시게 드나들며 미움을 독차지하는 불청객이지만,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지구의 허파 속에서 단 한 번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파리는,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완성하는 숨은 주역이자 대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비행 예술가이지요. 오늘은 늘 외면받던 파리의 삶 속에 숨겨진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의 편견 뒤에 숨겨진 경이로운 생존의 기술과 내공' 초록빛 잎사귀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아 에메랄드빛이나 구릿빛 광택을 내며 앉아 있는 파리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품어 안는 ‘정화(淨化)’의 신비

파리는 그 영롱한 겹눈을 눈으로 마주하기 전에, 온 방안을 휘젓는 소란스러운 날갯짓 소리와 다 다란 몸짓으로 우리의 일상을 가장 먼저 품어 안는 곤충입니다. 장수풍뎅이처럼 묵직한 힘을 과시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빠른 순발력과 유연함으로 숲의 가장 낮은 곳을 채우고 있지요.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의 청소부, 승(蠅), 옛 문헌에서는 파리를 ‘승’이라 불렀습니다. 깨끗하고 화려한 곳만을 찾는 다른 곤충들과 달리, 파리는 세상의 가장 지저분하고 썩어가는 곳을 향해 주저 없이 날아갑니다. 동물의 사체나 썩은 식물을 빠르게 분해하여 대지로 돌려보내는, 숲의 보이지 않는 ‘위대한 청소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온 셈입니다.

 

싹싹 비벼내는 겸손함 속의 치열함, 파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모습은 앞다리를 모아 싹싹 비비는 정겨운 행동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마치 용서를 구하거나 아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자신의 다리와 더듬이에 묻은 이물질을 닦아내어 감각을 최고조로 유지하려는 철저한 자기 관리의 행동입니다. 다음 비행을 위해 매 순간 자신을 정화하는 파리만의 성실한 태도입니다.

 

생태계를 살찌우는 가녀린 이정표, 제비와 참새가 하늘의 다정한 전령사라면, 파리는 숲속 수많은 새와 거미, 개구리들의 든든한 일등 양식이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미움받을지언정 숲의 먹이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내어주는 생태계의 숨은 주춧돌이자 이정표인 셈입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거대한 겹눈과 두 앞다리를 정성스럽게 비비는 파

‘찰나의 순간에 방향을 틀어 폭풍을 피한다’ 파리의 생존 미학

파리는 왜 다른 곤충들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거나 날카로운 집게턱을 키우지 않고, 오직 투명한 한 쌍의 날개와 거대한 눈만을 발전시켰을까요? 여기에는 찰나의 위험 앞에서도 단 1초 만에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파리만의 독보적인 비행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뒷날개를 지워 얻은 자유, 평균곤의 지혜, 파리는 날개가 네 개인 다른 곤충들과 달리, 뒷날개 두 개가 퇴화하여 단단한 추 모양의 ‘평균곤(자이로스코프)’으로 변했습니다. 이 작은 추가 공중에서 몸의 수평과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잡아주기 때문에, 파리는 비행 도중 90도로 급회전을 하거나 거꾸로 매달리는 등 인간의 첨단 항공기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비행 미학을 완성해 냅니다.

 

세상을 270도로 읽어내는 영롱한 등불, 파리의 머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겹눈은 수천 개의 작은 낱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보다 세상을 수십 배나 빠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가 파리채를 휘두르는 순간조차 파리에게는 마치 영화 속 느린 화면(슬로우 모션)처럼 보입니다.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 다가오는 위기를 정확하게 통찰하고 유연하게 피해 가는 내공의 생존법입니다.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눈부신 비상의 찬가’

많은 사람이 파리를 그저 소멸시켜야 할 해충으로만 기억하지만, 파리 역시 구더기 시절의 어둡고 축축한 땅속을 지나 굳은 번데기 방에서 홀로 몸을 말리며 하늘을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을 보냅니다. 완전히 굳어진 날개를 지쳐 힘차게 허공을 가를 때, 그 날갯짓은 대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하고 당당한 생명의 외침이 됩니다.

 

끊임없이 손을 비비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모습을 전하며,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척박하고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다음 도약을 위해 매 순간 내 안의 오물을 닦아내고 감각을 벼려낸다면, 당신 또한 거친 현실의 풍파 속에서 그 어떤 위기도 가뿐히 피해 갈 삶의 진정한 비행 장인이 될 테니까요”라고 우리를 나직이 위로하는 듯합니다.

 

파리가 지닌 삶의 상징은 ‘철저한 준비, 위기를 피하는 유연함, 그리고 숲의 순환’입니다.

화려한 나비처럼 예쁜 정원에 초대받진 못해도,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가장 치열하게 중심을 잡고 결국 대지의 정화를 완성하는 파리처럼, 우리 삶에 찾아오는 서럽고 고단한 정체의 시간들도 결국 우리 내면의 생존 본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소중한 축적의 과정일 것입니다. 지금 혹시 너무 빠른 현실의 변화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계신가요?

 

단단한 번데기의 허물을 깨고 일어나 기어이 허공을 향해 가장 자유로운 날갯짓을 지쳐 나가는 파리처럼, 여러분의 묵묵한 인내와 성실함도 조만간 거친 현실을 깨우고 나만의 빛나는 존재감을 증명해 낼 찬란한 결실을 이뤄낼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