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어둠이 길수록 노래는 찬란하다, 매미가 가르쳐 준 7년의 약속
봄날의 냉이와 달래에서 시작해 복숭아, 참외, 그리고 수박이 대지 위에서 뜨거운 결실을 맺으며 여름이 깊어갈 때, 눈에 보이는 식물들의 푸름을 넘어 온 숲과 하늘을 뒤흔드는 거대한 소리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매미입니다.
창문을 열면 찌는 듯한 더위와 함께 들려오는 매미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잠을 깨우는 소음일지 몰라도 대자연의 눈으로 바라보면 온몸의 뼈를 깎아내며 부르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 고결한 생명의 찬가이지요. 오늘은 찬란한 한 달의 비상을 위해 어두운 흙 속에서 묵묵히 자신을 정제해 온 매미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귀보다 마음으로 먼저 품어 안는 ‘간절(懇切)’의 신비
매미는 눈이나 귀로 그 존재를 마주하기 전에, 온 숲을 가득 채우는 울림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는 생동감과 뜨거운 에너지를 먼저 품어 안는 곤충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며 날아다니는 나비나 잠자리와 달리, 인생의 대부분을 차갑고 어두운 땅속에서 보내며 오직 한 번의 빛나는 여름날을 멋지게 보내기 위해, 어두운 땅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참고 노력하며 스스로를 아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지요.
군자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을 품은 곤충, 선(蟬), 옛 선조들은 매미를 ‘선’이라 부르며 매우 고결한 생물로 여겼습니다. 매미의 머리 모양에서 글을 숭상하는 문(文)의 덕을, 오직 이슬과 나무 수액만 먹고 사니 청렴함(淸)을, 집을 짓지 않으니 검소함(儉)을, 철에 맞추어 왔다가 가니 신의(信)를, 그리고 농작물을 해치지 않으니 어질 仁(인)을 가졌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임금님이 쓰던 모자인 ‘익선관(翼蟬冠)’에도 매미의 날개 모양을 새겨 넣어 그 고결한 지혜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숲의 생명력을 일깨우는 알람, 매미의 울음소리가 시작되면 비로소 숲의 모든 생명도 여름의 정점에 달했음을 깨닫습니다. 수박과 참외가 단맛을 가득 채우고 나리가 주황빛 꽃을 활짝 펼치듯, 매미는 온몸을 울려 "지금이 당신이 가진 가장 뜨거운 열정을 불태워야 할 때"라고 일깨워주는 다정한 자연의 파수꾼입니다.

‘찬란한 비상을 위해 껍질을 벗어 던진다’ 매미의 생존 미학
매미는 왜 태어나자마자 하늘을 날지 않고, 굳이 3년, 5년, 길게는 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아가야 할까요? 여기에는 거친 환경과 천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가장 완벽한 때를 기다려 삶을 완성하려는 매미만의 치밀하고 단단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다지는 내실, 땅속의 굼벵이는 나무뿌리의 즙을 먹으며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키웁니다. 산삼이 일 년에 고작 쌀알만 한 내공을 쌓고 노간주나무가 바위산에서 속을 쇠붙이처럼 단단하게 다지듯, 매미 역시 남들이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랜 인내의 시간을 거치며 지상으로 나갈 단단한 골격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허물을 벗어던지는 탈피(脫皮)의 용기, 여름밤, 이윽고 때가 되면 굼벵이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와 단단했던 자신의 등껍질을 가르고 나옵니다. 이를 한방에서는 ‘선퇴(蟬退)’라고 부르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귀한 약재로 쓰지요. 자신이 머물던 익숙하고 안전한 껍질을 과감히 찢고 나오는 아픔과 용기가 있었기에, 비로소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투명한 날개를 가질 수 있는 외유내강의 미학입니다.
기다림 끝에 터지는 ‘지상 최고의 독무’
많은 사람이 매미를 뜨거운 여름날의 시끄러운 울음으로만 기억하지만, 그 소리는 수년간의 어둠을 견뎌낸 자만이 터뜨릴 수 있는 승리의 함성입니다. 지상에 나온 매미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 매미는 그 짧은 한 달 동안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사랑을 나누며 제 소임을 다하지요.
나뭇가지에 앉아 하늘이 떠나가라 울어대며, “지금 당신의 삶이 차갑고 어두운 땅속처럼 막막하고 길게 느껴질지라도 조급해하지 마세요. 오랜 시간 묵묵히 내실을 다지고 나의 껍질을 깨뜨릴 용기를 준비한다면, 머지않아 당신의 인생에서도 가장 찬란하고 눈부신 황금빛 독무의 계절이 활짝 열릴 테니까요”라고 우리를 나직이 위로하는 듯합니다.
매미의 상징은 ‘인내, 고결함, 그리고 후회 없는 열정’입니다.
수년간의 침묵을 거쳐 단 한 달의 찬란한 비상을 완성하는 매미처럼, 우리 삶을 가로막는 오랜 정체기와 외로운 기다림의 시간도 결국 우리 인생에서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중한 축적의 과정일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나만의 때를 기다리며 고단한 일상 속에서 숨을 죽이고 계신가요?
단단한 허물을 깨고 일어나 기어이 푸른 하늘을 향해 가장 당당한 노랫소리를 퍼뜨리는 매미처럼, 여러분의 묵묵한 인내와 성실함도 조만간 거친 현실을 깨우고 주변을 환하게 감동하게 할 찬란한 결실을 이뤄낼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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