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찬공기를 깨우는 고결한 향기, 매화의 기개
머리 위 나무 끝에서 가장 먼저 봄의 소식을 타전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매화(梅花)입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해 왔지요.
오늘은 은은한 향기 속에 감춰진 매화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속에 담긴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름보다 먼저 다가오는‘암향(暗香’의 신비입니다.
매화는 눈으로 보기 전에 코로 먼저 마중 나가는 꽃입니다. 겨울의 끝자락, 마른 나뭇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를 옛사람들은 암향(暗香) 즉 그윽하게 풍겨오는 향기라 불렀습니다.
설중매(雪中梅)는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라는 뜻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사군자(四君자)의 으뜸은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기에 사군자의 첫머리에 놓였습니다. 매실나무의 꽃은 우리가 여름에 즐겨 마시는 매실청의 주인공이 바로 이 매화나무(매실나무)입니다. 꽃은 눈으로 즐기고, 열매는 입으로 즐거움을 주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할 수 있지요.
다음은‘추워야 향이 깊다’매화의 생존 미학입니다.
매화는 왜 굳이 찬바람이 부는 계절을 선택해 꽃을 피울까요? 여기에는 숲의 질서를 지키면서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치밀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이른 봄에는 곤충들이 매우 귀합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곤충들을 멀리서도 불러모으기 위해, 다른 꽃들보다 훨씬 진하고 멀리 퍼지는 향기를 만들어냅니다.
추위가 빚어낸 단단함은 매화는 영하의 기온에서도 꽃잎이 얼어 터지지 않도록 세포 내 당분 농도를 높이는 기염을 토합니다. 매화는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말처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매화일수록 그 향기가 더욱 깊고 맑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다림 끝에 만나는‘첫 마음’입니다.
매화는 화려한 벚꽃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듯 피지 않습니다. 한 송이, 두 송이 조심스럽게 피어나며‘이제 곧 봄이 올 테니 조금만 더 힘내세요’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이기 전, 마른 가지 끝에 외롭게 달린 한 송이의 매화를 탐매(探梅, 매화를 찾아 나섬)하며 감상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네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매화의 꽃말은‘고결, 결백, 인내’입니다.
가장 추울 때 가장 맑은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처럼, 우리 삶의 겨울도 우리를 더욱 향기롭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혹시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며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차가운 공기를 뚫고 전해지는 매화 향기처럼, 여러분의 노력도 조만간 아름다운 결실로 피어나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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