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도심의 열기를 식히는 거대한 초록 손바닥, 버즘나무의 아량

이모 저모 2026. 5. 15. 20:12

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도심의 열기를 식히는 거대한 초록 손바닥, 버즘나무의 아량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매화와 푸른 봄까치꽃의 계절이 지나고 본격적인 한여름의 열기가 아스팔트를 달굴 때 도심 한복판에서 가장 넓고 시원한 그늘막을 펼쳐주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버즘나무입니다.

 

우리에게는 플라타너스라는 이국적인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이 나무는 커다란 잎사귀로 햇빛을 가려주며 오랫동안 인류의 든든한 쉼터가 되어주었지요. 오늘은 메마른 도심 속에서도 묵묵히 제 몸을 키워 모두를 품어주는 버즘나무의 지혜와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생명력을 나누고자 합니다.

 

껍질 속에 감춰진 치유와 쉼터의 신비

버즘나무는 눈으로 보기 전에 그 청량한 그늘 아래서 온몸으로 먼저 마중 나가는 나무입니다. 얼룩덜룩하게 벗겨지는 줄기의 모습이 마치 아이들 얼굴에 피던 버짐을 닮았다 하여 정겨운 우리말 이름이 붙었습니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그리스어로 넓다 라는 뜻의 플라티스(platy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름처럼 아이들의 얼굴보다 커다란 잎사귀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도심의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천연 파라솔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나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이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진리와 의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수많은 이들의 고뇌와 지혜를 품어준 역사를 가진 나무이지요.

 

도시의 영웅, 요즘은 가로수로 우리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매화가 꽃과 열매로 기쁨을 주듯 버즘나무는 넓은 잎으로 도심의 미세먼지와 매연을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정화하는 환경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픽셀스 사진

허물을 벗어야 크게 자란다 버즘나무의 생존 미학

버즘나무는 왜 줄기의 껍질을 매끈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얼룩덜룩하게 허물을 벗어던질까요? 여기에는 거친 도심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버즘나무만의 치밀하고 단단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를 비워내는 탈피(脫皮), 대부분의 나무는 자라면서 껍질이 거칠게 갈라지지만, 버즘나무는 조각조각 허물을 벗듯이 껍질을 떨어뜨립니다. 이는 도심의 매연과 분진으로 숨구멍이 막힌 해묵은 껍질을 과감히 벗겨내어 새 숨을 쉬기 위함입니다. 과거의 고통과 때를 과감히 버려야만 더 큰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연의 가르침입니다.

 

증산작용을 통한 도심 냉각, 한여름 버즘나무 아래에 서면 에어컨을 켠 듯 시원함을 느낍니다. 거대한 잎사귀들이 머금고 있던 수분을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증산작용이 어느 나무보다 활발하기 때문입니다. 열이 가득한 도심의 온도를 스스로 낮추는 이타적인 생존법입니다.

픽셀스 사진

기다림 끝에 매달리는 방울 열매의 약속

버즘나무는 가을이 되면 넓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동글동글한 방울 모양의 열매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방울나무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삭풍이 부는 겨울날 벌거벗은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들을 흔들며 모든 허물을 벗어던진 겨울 뒤에는 반드시 푸른 여름이 다시 찾아옵니다. 라고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는 듯합니다.

 

버즘나무의 꽃말은 천재, 휴식, 화합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벗겨내며 도심의 가장 가혹한 자리에서 쉼터를 만들어주는 버즘나무처럼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시련과 변화들도 결국 우리를 더 넓고 깊은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일 것입니다. 삭막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도 묵묵히 푸른 그늘을 일구어내는 버즘나무처럼 여러분의 인내와 노력도 조만간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어줄 눈부신 결실로 피어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