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이야기

대지를 뚫고 올라온 태고의 생명력, 고사리의 굳건함

이모 저모 2026. 5. 5. 23:02

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대지를 뚫고 올라온 태고의 생명력, 고사리의 굳건함

머리 위 나무 끝에서 매화와 이팝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발밑에서 봄까치꽃과 민들레가 피어날 때, 깊은 산속 그늘진 곳에서 아기의 주먹처럼 꽉 쥔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고사리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고사리의 모습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소박한 삶의 정취를 상징해 왔지요. 오늘은 화려한 꽃 대신 묵묵한 인내로 수억 년의 시간을 버텨온 고사리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사리가 막 올라올대 모습입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품어 안는 ‘태고(太古)’의 신비

고사리는 눈으로 보기 전에 그 강인한 생동감으로 우리의 마음을 먼저 두드리는 식물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훨씬 전인 공룡 시대부터 지금까지 제 모습을 지켜온,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존재이지요.

  • 생명의 시작, 겨울의 끝자락, 낙엽이 겹겹이 쌓인 습한 땅 위로 솜털이 보송보송한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 때면, 비로소 산에도 봄의 기운이 완연해졌음을 느낍니다.
  • 민초의 상징, 고사리는 아무리 꺾어도 그 자리에서 다시 돋아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모진 풍파를 견뎌낸 우리 백성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닮았다고 하여 ‘민초의 상징’이 되었지요. 명절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귀한 나물이자, 배고픈 시절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 산에서 나는 소고기, 고사리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해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립니다. 우리 몸의 기운을 돋우고 열을 내리는 귀한 약재로도 쓰이니, 척박한 골짜기에서 대지가 우리에게 베푸는 아낌없는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사리는 우리에게 많은 영양분을 주는 유익한 나물입니다.

‘낮게 엎드려야 일어설 수 있다’ 고사리의 생존 미학

고사리는 왜 화려한 꽃을 피워 자신을 뽐내지 않고, 낮은 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 살아갈까요? 여기에는 거친 자연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고 번성시키려는 치밀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 겸손과 실질의 지혜, 고사리는 화려한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포자를 통해 조용히 세력을 넓혀갑니다. 겉모습을 치장하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실질적인 생존에 집중하는 지혜입니다.
  • 유능제강(柔能制剛)의 힘, 갓 돋아난 고사리는 만지면 부러질 듯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는 겨울내 얼어붙어 있던 단단한 흙을 뚫고 나오는 폭발적인 힘이 숨어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결국 딱딱한 대지를 이겨내는 셈입니다.
  • 저항을 최소화하는 설계, 소용돌이처럼 동그랗게 말려 있는 어린순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연약한 잎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의 정교한 설계입니다. 시련의 시기에는 몸을 잔뜩 낮추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영리한 인내를 보여줍니다.

기다림 끝에 만나는 생명의 숨결

고사리는 화려한 꽃들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숲의 가장 낮은 곳을 지키며, 비바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싹은 다시 돋아납니다.라고 우리를 다독이는 듯합니다.

 

고사리의 꽃말은 기적, 정성입니다. 보이지 않는 숲의 그늘에서 정성을 다해 단단한 대지를 뚫고 생명을 틔워내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위대한 기적입니다.

가장 어두운 숲 바닥에서 가장 먼저 초록의 빛을 발하는 고사리처럼, 우리 삶의 그늘진 시간도 결국 우리를 더욱 단단한 존재로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혹시 무거운 책임감이나 고단한 일상에 눌려 계신가요? 굳은 땅을 부드럽게 뚫고 기어이 솟아오르는 고사리처럼, 여러분의 굽히지 않는 의지도 머지않아 단단한 현실을 뚫고 푸른 희망을 틔워낼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