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순백의 날개, 황새가 품은 고결한 동행
낮은 들판에서 바람을 타고 흔들리던 양귀비꽃이 지나고 소나무 숲이 짙은 푸르름을 더해갈 때, 저 멀리 탁 트인 하늘 위로 거대하고 우아한 날갯짓을 선보이며 대지의 풍요로움을 축복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황새입니다.
"황새가 둥지를 틀면 그 마을에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황새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길조를 넘어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신성한 영조(靈鳥)였습니다. 오늘은 한때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가 기적처럼 다시 돌아온 황새의 지혜와, 그 속에 담긴 고결한 생명의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품어 안는 ‘길상(吉祥)’의 신비
황새는 눈으로 마주하기 전에 그 압도적인 자태와 고요함으로 우리의 가슴을 먼저 따뜻하게 품어 안는 새입니다. 백로와 해오라기보다 훨씬 커다란 몸집에 붉은 눈가와 검은 날개깃을 지닌 황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온 들판을 살아 숨 쉬게 만듭니다.
나무 중에서 가장 높고 튼튼한 대장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사는 아주아주 거대하고 멋진 새 큰 새(한새), 황새라는 이름은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 '한'에서 유래하여 '한새'라고 불리다가 황새가 되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날개를 펼치면 무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며, 하늘과 땅을 잇는 가장 당당한 메신저 역할을 해왔습니다.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사랑의 상징, 황새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며 서로를 지키는 지극한 순정을 지녔습니다. 번식기가 되면 부부를 상징하는 정겨운 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정성스레 둥지를 가꾸지요. 우리 선조들이 혼례 가구에 황새를 자주 그려 넣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소중한 인연과 사랑의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온 생명의 이정표, 한동안 우리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황새가 최근 상생의 노력 끝에 다시 우리 숲과 들판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황새가 돌아왔다는 것은 그 땅이 다시 맑아지고 생태계가 살아났음을 의미하기에, 황새는 우리에게 대자연의 회복을 알리는 가장 고마운 이정표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게 내려다본다’ 황새의 생존 미학
황새는 왜 굳이 마을 어귀의 가장 커다란 느티나무나 소나무 꼭대기에 웅장한 집을 짓고 살아갈까요? 여기에는 거친 풍파 속에서도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내고 숲과 상생하려는 황새만의 치밀하고 단단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는 거인의 사냥법, 황새는 거대한 몸집을 가졌지만 들판에서는 한없이 고요합니다. 물가나 논바닥을 느릿느릿 걸으며 먹이를 탐색하다가, 완벽한 순간이 오면 길고 단단한 부리로 단숨에 먹이를 낚아챕니다. 백로나 해오라기가 몸을 웅크려 인내하듯, 황새 역시 자신의 거대함을 다스리며 주위 환경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절제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바람을 이겨내는 웅장한 가옥, 황새는 해마다 쓰던 둥지에 새로운 나뭇가지를 더해가며 집을 점점 더 크고 견고하게 키워갑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해지는 소나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둥지에는 가족의 역사와 모진 바람을 이겨낸 삶의 훈장이 겹겹이 쌓여가는 셈입니다.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위대한 비상’
황새는 땅 위에서는 누구보다 신중하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간에는, 세상 그 어떤 새보다 우아하고 자유로운 비상을 보여주지요.
하늘 높이 올라 커다란 날개로 온 들판을 덮을 듯 유연하게 활공하며, “지금 걷고 있는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고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당신이 날개를 펼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비상이 시작될 것입니다”라고 우리를 나직이 다독이는 듯합니다.
황새에게 어울리는 상징은 ‘고결한 인연, 기적 같은 회복, 대지의 평안’입니다.
멸종의 위기를 딛고 기어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와 푸른 하늘을 활짝 열어젖힌 황새처럼, 우리 삶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절망과 시련들도 결국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기적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내 힘으로 바꾸기 힘든 막막한 현실 앞에서 날개가 꺾인 듯 낙심하고 계신가요?
가장 거친 바람을 타고 기어이 하늘 높이 우아한 날갯짓을 펼쳐 보이는 황새처럼, 여러분의 묵묵한 인내와 고결한 노력도 조만간 단단한 현실을 뚫고 눈부신 희망의 비상을 이뤄낼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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