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는 다정한 날갯짓, 참새가 가르쳐 준 '가장 가까운 공존'
봄날의 냉이와 여름날 매미의 뜨거운 합창이 지나고, 대지가 황금빛 결실을 준비하며 계절의 흐름을 이어갈 때, 숲의 깊은 그늘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 한복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가에서 조잘조잘 귀여운 수다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참새입니다.
갈색 깃털에 통통한 몸집, 그리고 뺨에 콕 박힌 검은 점이 매력적인 참새는, 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결코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는 묘하고도 다정한 성정을 지닌 우리의 가장 오래된 새 동무이지요. 오늘은 거대한 자연을 찾아 멀리 떠나기보다, 인간의 삶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박한 행복과 공존의 길을 걸어가는 참새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품어 안는 ‘친근(親近)’의 신비
참새는 눈으로 그 앙증맞은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기 전에, 아침 마당을 가득 채우는 "짹짹, 조잘조잘" 활기찬 소리로 우리의 고단한 마음을 먼저 다정하게 품어 안는 새입니다. 깊은 산속의 독수리나 학처럼 고고함을 뽐내진 않지만, 시골집 장독대 옆이나 도심의 공원 벤치 주변에서 늘 우리와 호흡을 함께해 오고 있지요.
가장 참되고 흔한 진짜 새, 참새(雀), 우리가 먹는 '참외'가 진짜 오이라는 뜻이듯, '참새'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참되고 진짜인 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자로는 '작(雀)'이라고 쓰지요. 매미가 어둠 속에서 인내를 벼려냈다면, 참새는 인간의 온기가 남아있는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신들만의 소박한 삶을 채워온 셈입니다.
벼 이삭과 벌레를 나누는 상생의 이웃, 한때 참새는 가을철 농부들의 소중한 벼를 축내는 '해로운 새'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참새는 봄과 여름철, 새끼를 키우는 동안에는 논밭의 수많은 해충과 벌레들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인간의 곡식을 조금 나누어 먹는 대신, 땅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다정한 공존의 파트너였던 것입니다.
일상의 곁을 지키는 갈색 이정표, 소나무가 높은 산 위에서 우직한 기개를 보여준다면, 참새는 가녀린 전봇대와 담벼락 위를 오르내리며 "오늘 하루도 기운차게 시작해 보세요"라고 나직이 인사를 건네는 우리 삶의 가장 정겨운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인간의 온기 속에 나를 숨긴다’ 참새의 생존 미학
참새는 왜 다른 새들처럼 천적과 위험이 도사리는 깊은 산속이나 무인도를 찾아가 둥지를 틀지 않고, 굳이 시끄럽고 복잡한 인간의 집 지붕 틈새나 담벼락 사이에 자리를 잡고 살아갈까요? 여기에는 숲속의 무시무시한 맹금류들로부터 자신과 새끼를 지켜내려는 참새만의 아주 영리하고 치밀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거대한 인간을 방패로 삼는 지혜, 참새에게 매나 부엉이, 황조롱이 같은 존재는 아주 무서운 천적입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맹금류들은 신기하게도 인간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는 잘 접근하지 못합니다. 참새는 바로 이 점을 이용했습니다. 인간을 적당히 경계하면서도, 인간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거대한 인간을 자신들의 '천연 방패'로 삼은 영리한 생존법입니다.
작기에 가벼운 연대의 힘, 참새는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홀로 다니기보다 늘 수십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무리 중 한 마리가 위험을 감지하고 "짹!" 하고 경고를 보내면,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지요. 약점을 숨기기보다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여 거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조화의 미학입니다.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소박한 날갯짓의 찬가’
많은 사람이 참새를 그저 흔하고 작아서 눈여겨보지 않지만, 참새는 매서운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남쪽 나라로 도망치지 않고 온몸의 깃털을 부풀린 채 우리 곁을 지켜내는 텃새입니다. 얼어붙은 마당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기어이 봄을 맞이하고, 여름내 부지런히 새끼를 키워내며 제 소임을 다하지요.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조잘거리며, “거대하고 화려한 성공을 쫓느라 멀리 헤매지 마세요. 지금 내가 머무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서로 다정하게 소통하고 내실을 채워간다면, 나의 소박한 삶 또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활기찬 노랫소리로 가득 찰 테니까요”라고 우리를 나직이 위로하는 듯합니다.
참새의 상징은 ‘친근함, 조화로운 공존, 일상의 행복’입니다.
화려한 공작새처럼 빛나진 않아도, 매일 아침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살아있음의 활기를 전해주는 참새야말로 진짜 자연이 우리에게 준 다정한 선물이 아닐까요? 우리 삶에 찾아오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들도 결국 우리 내면에 가장 따뜻하고 인간다운 온기를 채워 넣는 소중한 축적의 과정일 것입니다. 지금 혹시 거대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조급해하고 계신가요?
가녀린 전선 위에서 기어이 가장 활기찬 새침한 미소를 피워내는 참새처럼, 여러분의 묵묵한 인내와 성실함도 조만간 단단한 현실을 깨우고 주변을 환하게 미소 짓게 할 찬란한 결실을 이뤄낼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서
'조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침묵으로 지배하는 밤의 우주, 부엉이가 가르쳐 준 ‘경청(傾聽)의 내공’ (1) | 2026.07.11 |
|---|---|
| 지평선을 넘어온 약속의 날개, 제비가 가르쳐 준 ‘귀향(歸鄕)의 미학’ (2) | 2026.07.10 |
|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순백의 날개, 황새가 품은 고결한 동행 (6) | 2026.06.13 |
| 밤을 조용히 기다리는 해오라기가 가르쳐 준 인내심의 지혜 (0) | 2026.06.13 |
| 푸른 소나무 위로 펼쳐진 하얀 순수, 백로의 고고한 기다림 (0) | 2026.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