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하늘에 새긴 초록의 왕관, 백합나무가 가르쳐 준 ‘곧고 바른 중심의 미학’

이모 저모 2026. 7. 17. 23:48

이정태 숲해설가가 읽어주는 ‘자연의 지혜’

하늘에 새긴 초록의 왕관, 백합나무가 가르쳐 준 ‘곧고 바른 중심의 미학’

봄날의 복수초와 봄까치꽃이 지나간 자리에 여름의 곤충들이 뜨거운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은행나무가 수억 년의 세월을 우직하게 증명할 때,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한 치의 흩어짐도 없이 곧게 뻗어 올라가 숲의 든든한 지붕이 되어주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백합나무입니다.

 

나무에 피는 연꽃 혹은 튤립을 닮았다 하여 ‘튤립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거목은, 시원스럽게 뻗은 줄기와 세련된 부채 모양의 잎사귀로 숲의 기품을 한 단계 높여주는 아름다운 나무이지요. 오늘은 하늘을 향해 당당히 고개를 들면서도 주변의 생명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백합나무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곧은 신념 뒤에 숨겨진 기품 있고 따뜻한 내면의 위로' 맑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올라간 백합나무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품어 안는 ‘기상(氣象)’의 신비

백합나무는 오월의 푸른 숲속에서 주황빛 줄무늬를 달고 피어나는 신비로운 꽃을 마주하기 전에,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오른 우람한 줄기와 그 아래 섰을 때 내려앉는 청량한 숲의 기운만으로 우리의 고단한 마음을 먼저 시원하게 품어 안는 든든한 거목입니다. 낮게 조잘대는 들꽃들 사이에서 숲의 웅장한 천장을 만들어내며, 보는 이의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들어주지요.

 

나무 위에 피어난 고결한 연꽃, 백합나무, 학명(Liriodendron tulipifera)에도 ‘튤립을 맺는 백합나무’라는 뜻이 담겨 있을 만큼 동서양 모두가 그 고귀한 형태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소나무가 바위틈에서 굽이치는 굳건한 절개를 보여준다면, 백합나무는 맑은 숲 한가운데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곧고 바르게 성장하겠다"는 청렴한 선비의 기상을 몸소 실천해 보입니다.

 

지구의 가슴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파수꾼, 백합나무는 자람세가 매우 빠르면서도 탄소 흡수 능력이 다른 나무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기후변화 시대의 구원수’입니다. 인간이 내뿜는 오염물질을 거대한 몸집으로 묵묵히 받아내고 맑은 산소를 아낌없이 뿜어내어, 숲과 지구 생태계를 건강하게 살찌우는 다정한 조력자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계절을 거쳐 다듬어지는 단단한 내실, 겉보기에는 한없이 이국적이고 화려해 보이지만, 백합나무의 목재는 가벼우면서도 뒤틀림이 없어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 귀한 재료(카나리아우드)로 쓰입니다. 외형의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중심을 단단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온 내공의 증거입니다.

연록색의 넓은 잎사귀 사이로 수줍게 숨어 피어난 주황색 테두리의 고결한 백합나무

‘하늘을 향하되 주변의 빛을 가리지 않는다’ 백합나무의 생존 미학

백합나무는 왜 다른 나무들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주변 식물들을 누르지 않고, 굳이 줄기를 위로만 곧게 곧게 키워 높은 창공에서 비로소 초록의 왕관을 펼쳐 보일까요? 여기에는 거친 숲의 생존 경쟁 속에서 나만의 길을 가되, 이웃과 조화롭게 상생하려는 백합나무만의 치밀하고 단단한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바람을 비껴가는 가위 모양 잎사귀의 지혜, 백합나무의 잎은 끝을 가위로 싹둑 잘라놓은 듯한 독특한 사각형(또는 거위 발바닥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넓은 잎들은 한여름의 거센 태풍이 몰아칠 때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깃발처럼 날개를 지치듯 가볍게 흔들리며 거친 바람의 에너지를 유연하게 분산시킵니다. 거친 풍파를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유연한 생존법입니다.

 

하늘을 우러르는 단 하나의 중심축, 백합나무는 줄기가 곁눈질하지 않고 오직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곧게 자라는 강한 ‘顶芽우세성(정아우세성)’을 가졌습니다. 사소한 유혹이나 주변의 소란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목표한 방향을 향해 우직하게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흔들리지 않는 내공의 미학입니다.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황금빛 비상의 축제’

많은 사람이 백합나무를 그저 키가 큰 가로수로만 기억하지만, 가을이 깊어지면 백합나무는 온 잎사귀를 은은하고 포근한 황금빛 단풍으로 물들이며 숲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위로를 지상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열매 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개를 지쳐 날아가며 또 다른 미래를 심어두지요.

 

하늘 높이 푸른 왕관을 치켜세우고 숲을 수호하며,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거나 현실의 타협에 나만의 중심을 잃고 곁눈질하지 마세요. 백합나무처럼 곧고 바른 신념을 품고 묵묵히 위를 향해 성장해 간다면, 당신의 삶 또한 머지않아 수많은 이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함께 고결한 인생의 결실을 보여주게 될 테니까요”라고 우리를 나직이 격려하는 듯합니다.

 

백합나무의 상징은 ‘고결한 기상, 흔들리지 않는 중심, 그리고 상생의 내실’입니다.

화려한 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우직하게 자라나 기어이 숲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백합나무처럼, 우리 삶에 찾아오는 무겁고 고단한 책임감과 외로운 성장의 시간도 결국 우리 인격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다져가는 소중한 축적의 과정일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나를 둘러싼 단단한 현실 속에서 나만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계시진 않나요?

 

척박한 환경을 뚫고 일어나 기어이 푸른 하늘 가장 높은 곳에 당당한 왕관을 씌우는 백합나무처럼, 여러분의 묵묵한 인내와 성실함도 조만간 거친 현실을 깨우고 주변을 환하게 보듬어 안을 눈부신 결실을 이뤄낼 것입니다.

 

대전 도안동에서